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더 웨일(The Whale, 2022)』은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한 남자가 마지막 삶의 순간에서 다시금 인간 관계와 감정의 회복을 시도하는 과정을 그린 심리 드라마다. 272kg이 넘는 거구의 몸으로 아파트 안에 갇혀 지내는 전직 영어 교사 찰리는, 건강이 악화돼 죽음을 앞두고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딸 엘리와 관계를 회복하고자 노력하며, 동시에 자신의 죄책감, 외로움, 과거의 선택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이 영화는 단지 비만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상실과 자책, 고립과 용서,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감정의 기록이다. 무거운 몸에 갇힌 한 남자의 이야기 속에서 관객은 ‘몸’이 아니라 ‘마음’의 크기를 마주하게 되며, 마지막 순간에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느끼게 된다.
육체에 갇힌 삶, 자책과 상실이 만든 감정의 감옥
찰리는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던 교사였으나, 연인 앨런의 자살 이후 극심한 죄책감과 우울에 빠져 과식으로 몸을 망치게 된다. 그 결과 그는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비만 상태로, 아파트 안에서 배달음식과 온라인 수업으로 연명하며 살아간다. 찰리는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고, 카메라조차 켜지 않은 채 수업을 진행하며, 인간 관계를 최소화한 채 살아간다. 그의 삶은 단절되고 메마르며, 살아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상태다. 그러나 그 안에는 여전히 누군가를 위한 마음과, 잘못을 바로잡고 싶은 진심이 남아 있다. 영화는 그의 움직일 수 없는 몸을 클로즈업하며, 외형적 한계보다 내면의 고통과 억눌린 감정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찰리는 스스로를 처벌하듯 먹고, 숨 쉬는 것조차 괴로워하면서도, 인간으로서 마지막 존엄을 지키려 한다. 그 안에 담긴 정서는 연민이 아닌, 깊은 슬픔과 인간 본연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다.
관계의 회복, 딸과의 만남이 주는 구원 가능성
찰리는 오래전 가정을 떠나 딸 엘리를 버린 채 연인과 함께 살았다. 엘리는 그를 증오하고, 찰리는 그 죄책감에 시달려왔다. 죽음을 앞둔 찰리는 마지막으로 그녀와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처음에는 냉담하고 공격적인 엘리는 아버지에게 독설을 퍼붓고, 돈을 원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찰리는 그녀를 비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계속 대화를 시도한다. 그는 엘리의 모든 행동 속에서 ‘좋은 사람’이 되려는 가능성을 본다. 그녀의 분노마저도 이해하려 애쓰고, 어떤 순간에도 희망을 놓지 않는다. 찰리는 딸에게 “넌 놀라운 아이야”라고 말하며, 끝까지 사랑을 표현한다. 영화는 이 둘의 관계를 통해, 상처받은 감정도 다시 회복될 수 있음을 말한다. 단, 그 회복은 용서의 강요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찰리의 삶이 비록 물리적으로는 한계에 다다랐지만, 감정의 회복은 여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 관계가 보여준다.
죽음 앞의 고백,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영화는 찰리의 신체를 통해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계속해서 암시한다. 그는 숨을 헐떡이고, 심장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을 겪으며도, 여전히 글쓰기와 문학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려 한다. 그의 수업은 문학적인 평가보다는 학생들에게 “정직하라”고 요청한다. 그는 진심을 담은 글에서 인간다운 감정을 느끼고, 그것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붙잡고 싶은 유일한 가치임을 알게 된다. 그가 반복해서 읽는 글, “나는 슬펐지만 괜찮았다”는 구절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이다. 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냈고, 스스로를 잃었으며, 결국 모든 것을 잃을 운명에 있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누군가에게 ‘괜찮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그의 죽음은 단지 육체의 종료가 아니라, 감정적 고백의 완성이다. 영화는 삶과 죽음 사이, 인간다움과 포기에 대해 정직하게 묻는다. 관객은 찰리의 고백을 통해, 인간의 존엄이 결코 외형에 있지 않음을 실감하게 된다.
결론: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그 진심이 전하는 마지막 위로
『더 웨일』은 찰리라는 인물의 거대한 육체보다 더 큰 ‘내면’을 보여주는 영화다. 그는 실패했고, 무너졌고, 포기하려 했지만, 마지막엔 감정을 전하기 위해 다시 손을 뻗는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가 외면했던 삶의 가장 아픈 구석들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든다. 누군가는 그를 불쌍하게 여길지 모르지만, 영화는 그러한 시선을 거부한다. 찰리는 동정이 아닌 ‘존중’을 받을 만한 인물이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딸을 믿고, 누군가의 진심을 기다리며, 문학과 감정을 붙잡는다. 『더 웨일』은 인간은 완벽하지 않아도, 연결을 시도하는 존재라는 희망을 전한다. 그가 남긴 유일한 유산은 “진심을 담아 살아가는 것”이다. 비록 삶은 괴롭고 외롭고 때로는 용서받을 수 없지만,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다면—“너는 좋은 사람이야”—그 한마디가 인생 전체를 구원할 수 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그 진심이 전하는 마지막 위로는 관객의 마음 깊은 곳에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