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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페이보릿> 권력, 질투, 여성 간 심리전의 절묘한 연출

by rednoodle02 2025. 7. 25.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더 페이버릿>은 18세기 영국 궁정을 배경으로, 세 명의 여성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권력과 감정의 치열한 심리전을 다룬 작품이다. 실존 인물인 앤 여왕과 그녀의 최측근인 사라 처칠, 그리고 새롭게 궁정에 입성한 아비게일 사이의 관계는 단순한 정치 게임을 넘어, 질투와 연민, 야망과 생존 본능이 얽힌 복합적인 감정 구조로 전개된다. 이 영화는 란티모스 특유의 불편하면서도 세련된 유머와 과장된 시각 언어를 통해 시대극의 전형을 해체하며, 권력과 인간관계의 본질을 날카롭게 조명한다.

<더 페이버릿>은 역사적 배경을 차용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 내면의 본성과 권력욕, 사랑이라는 이름의 소유욕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본문에서는 세 여성의 인물 구도, 시각적 연출, 그리고 권력과 감정의 역전 드라마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영화 더 페이보릿 관련 사진

세 여성이 만든 권력의 삼각 구도

<더 페이버릿>의 핵심은 앤 여왕, 사라, 아비게일 세 인물 간의 역동적인 관계다. 앤 여왕은 병약하고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인물로 묘사되며, 그녀 곁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인물은 사라이다. 사라는 여왕과의 오랜 유대관계를 기반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국정을 실질적으로 좌지우지한다. 그러나 여왕의 총애를 받기 위해 새롭게 등장한 아비게일이 등장하면서 이 삼각 구도는 급변하게 된다. 아비게일은 처음에는 순진하고 희생적인 인물처럼 보이지만, 점차 그녀의 계산된 행동과 야망이 드러나며 권력의 추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세 여성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과 권력을 탐한다. 란티모스 감독은 이 관계를 단순한 주종 관계나 선악 구도로 다루지 않고, 세 인물 모두가 복잡한 내면을 지닌 입체적 캐릭터로 구성했다. 이 삼각 구도는 권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흔들리고, 감정과 정치가 얼마나 교묘하게 얽히는지를 드러낸다.

 

시각적 실험과 감정의 왜곡

<더 페이버릿>은 전통적인 시대극의 미장센을 차용하면서도, 그것을 해체하는 시각적 실험을 통해 감정의 왜곡과 인물 간의 긴장을 극대화한다. 특히 광각 렌즈와 극단적인 앵글의 사용은 공간을 비정상적으로 보여주며, 인물들의 감정 상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 예컨대 긴 복도를 따라 이어지는 광각 촬영은 인물의 고립감과 긴장감을 부각시키며, 넓은 궁정의 웅장함은 오히려 인물의 왜소함과 불안함을 강조한다. 조명 또한 매우 상징적으로 활용된다. 촛불과 자연광을 위주로 한 조명은 사실감을 주면서도, 인물의 그림자를 길게 늘이거나 얼굴의 일부만 비추는 방식으로 심리적 불안정을 드러낸다. 색감 역시 감정의 흐름을 따라 변화하며, 인물의 처지와 심리를 반영한다. 이런 연출은 관객에게 불편함과 긴장을 동시에 주며, 단순한 감정 몰입이 아닌, 인물의 심리를 ‘느끼게’ 만든다. <더 페이버릿>은 시각 언어를 감정 표현의 도구로 끌어올린 독특한 작품이다.

 

사랑인가 소유인가: 감정의 정치화

영화 속 인물들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권력의 수단으로 이용하거나, 감정 그 자체가 곧 권력의 증명이 된다. 앤 여왕은 외로움 속에서 정서적 위안을 찾기 위해 사라를 곁에 두었고, 아비게일은 여왕의 총애를 쟁취함으로써 권력을 얻는다. 하지만 이 감정들은 진실된 사랑이라기보다, 소유와 독점, 불안과 두려움이 얽힌 복합적인 심리다. 여왕은 끊임없이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확인받고 싶어 하며, 사라와 아비게일은 그 욕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 한다. 결국 이 관계들은 ‘사랑’이 아닌 ‘소유’로 귀결되며, 감정은 가장 사적인 동시에 가장 정치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여왕과 아비게일이 침묵 속에 시선을 교환하는 순간은 이 모든 관계의 불안정성과 공허함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더 페이버릿>은 사랑의 언어가 얼마나 쉽게 권력의 언어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보여준다.

 

결론 - 권력의 본질, 그리고 인간의 민낯

<더 페이버릿>은 단순한 궁정 사극이 아니다. 이 영화는 권력을 향한 욕망과 감정의 진실이 어디에서 충돌하는지를 날카롭게 해부한 작품이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기존의 역사극이 가진 엄숙함을 탈피해, 위트와 불편함, 절제와 과장을 자유롭게 오가며 인간 본성을 드러낸다. 세 명의 여성 인물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권력과 사랑을 추구하지만, 결국 모두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존재로 남는다. 영화는 이들의 선택과 감정이 가진 비극성을 담담히 보여주며, 진정한 권력이란 타인을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힘임을 암시한다. 또한 이 작품은 여성 인물을 전면에 내세워, 역사적 배경 속에서도 현대적인 주제의식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더 페이버릿>은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섬뜩하고, 아름다우면서도 기괴한, 정교하게 짜인 감정과 권력의 체스판이다. 그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민낯은 결코 낯설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