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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마이 카> 상실, 소통 그리고 예술을 통한 치유의 여정

by rednoodle02 2025. 8. 21.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2021)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3시간 러닝타임의 작품으로, 제74회 칸 영화제 각본상과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수상을 통해 전 세계적인 찬사를 받은 영화다. 이 작품은 단순한 드라마가 아닌, 인간의 상실과 트라우마, 소통의 어려움, 그리고 예술을 통한 치유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주인공 가후쿠 유스케는 배우이자 연극 연출가로, 아내의 죽음과 그 비밀을 알게 되면서 깊은 상실감을 겪는다. 그는 차 안에서 대본을 듣고 대사를 반복하며 과거를 붙잡고, 결국 운전기사 미사키와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영화는 침묵과 대화, 연극과 현실, 이동과 정체라는 다양한 대비 속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한다. 이 글에서는 영화가 어떻게 상실을 다루고, 자동차와 이동을 통해 상징을 확장하며, 연극과 예술을 통해 치유의 길을 제시하는지 심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 관련 사진

상실과 침묵의 무게

가후쿠 유스케는 아내 오토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후, 삶의 균형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그녀의 죽음은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건이 아니라, 그녀가 남긴 비밀을 알게 된 그에게는 더 큰 혼란을 남긴다. 그는 아내가 다른 남성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 진실을 직접 확인하거나 묻지 못한 채 그녀를 떠나보내야 했다. 이 미해결의 감정은 그를 침묵 속으로 몰아넣는다. 영화 속에서 가후쿠가 차 안에서 녹음된 아내의 목소리를 반복해서 듣는 장면은, 그가 과거의 상처에 매달려 여전히 대화의 부재와 맞서고 있음을 상징한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이 침묵을 단순히 고통이나 회피가 아니라, 인간이 상실을 내면화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제시한다. 침묵 속에서 가후쿠는 아내의 부재와 직면하고, 동시에 자신의 불안과 죄책감을 탐색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멈춤이 아니라, 서서히 치유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 단계로 볼 수 있다. 특히, 영화 속 침묵은 관객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대사 없는 긴 장면 속에서 관객은 인물의 내면을 함께 응시하게 되며, 그 침묵 자체가 강렬한 감정적 울림을 만들어낸다. 결국 이 영화가 보여주는 상실은 단순히 잃어버린 아픔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인간이 다시 자신을 발견하는 시작점이다.

 

자동차와 이동의 상징성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자동차는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중요한 상징적 공간으로 작동한다. 가후쿠는 자신의 사브 자동차 안에서 주로 대본을 듣고 연습하며, 아내의 목소리를 매개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간다. 그러나 히로시마 연극제에서 새로운 규정으로 인해 전용 운전기사 미사키가 배정되면서, 자동차는 그의 사적 공간에서 타인과 공유하는 공간으로 변화한다. 이 변화는 단순히 운전자의 교체가 아니라, 그의 삶이 타인과 연결되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전환점을 보여준다.

자동차는 외부의 시선과 소음을 차단한 채 두 인물이 진솔하게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다. 가후쿠와 미사키는 차 안에서 서로의 상처를 공유하고, 침묵 속에서 교감하며 점차 마음을 열어간다. 이동은 단순히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내면적 이동과 성장의 상징이다. 특히, 영화 후반부 홋카이도에서의 여행은 가후쿠와 미사키가 상실과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결정적 순간을 상징한다. 차 안에서 흘러가는 풍경은 두 인물이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로 나아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결국 자동차는 이 영화에서 인간 관계와 치유, 그리고 삶의 여정을 은유하는 가장 중요한 무대다.

 

연극과 예술의 치유

연극은 영화 속에서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주제와 깊이 맞닿아 있다. 가후쿠가 연출하는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는 영화의 핵심 주제와 교차한다. 연극 속 대사는 인물들의 현실과 공명하며, 가후쿠가 겪는 상실과 죄책감을 반영한다. 특히, 다양한 언어와 수화를 사용하는 연극은 소통의 본질을 보여준다. 언어가 달라도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호흡을 맞추며, 이는 인간 사이의 깊은 교감을 가능하게 한다. 청각장애인 배우가 수화로 연기하는 장면은, 언어가 소통의 절대적 조건이 아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진정한 소통은 마음의 전달과 수용에서 비롯됨을 드러낸다.

가후쿠에게 연극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아내의 부재와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표현하는 치유의 도구다. 그는 연극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객관화하고,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다시 바라본다. 예술은 그에게 고통을 회피하는 수단이 아니라, 고통을 직시하고 재해석하며 결국 화해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 하마구치 감독은 연극 장면과 현실 장면을 교차시키며, 예술과 삶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을 창출한다. 이는 예술이 삶을 모방하는 동시에, 삶을 치유하고 변화시킨다는 점을 강조한다.

 

결론 - 소통을 통한 삶의 회복

<드라이브 마이 카>는 상실과 트라우마에 갇힌 인간이 어떻게 소통과 예술을 통해 회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가후쿠는 아내의 죽음 이후 고립과 침묵 속에서 살아가지만, 미사키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상처를 나누고 치유의 길로 나아간다. 자동차라는 공간은 두 사람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연극이라는 예술은 그들의 감정을 해방시키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상실은 피할 수 없지만, 인간은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을 통해 고통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이 작품을 통해 침묵과 대화, 상실과 회복, 고독과 관계라는 인간의 근원적 주제를 탐구한다. 영화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을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으며, 그 서사적 밀도와 감정적 깊이는 현대 영화에서 보기 드문 성취다. 결국 <드라이브 마이 카>는 상처받은 인간이 서로의 고통을 통해 이해하고, 관계를 통해 새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관객은 이 작품을 통해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동시에 관계를 통한 회복의 가능성을 깊이 성찰하게 된다. 이 영화는 단순한 예술 작품을 넘어, 관객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철학적 여정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