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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 소리 없이 흘러가는 삶의 잔물결속 진실된 감정의 기록

by rednoodle02 2025. 7. 8.

 

알폰소쿠아론감독의『로마(Roma,2018)』는1970년대초멕시코시티의중산층가정을배경으로가사도우미클레오의삶을중심에놓고흐르는흑백영화다.화려한사건도극적인전개도없이그려지는일상의단면속에는묵직하고깊은감정의파도가일고,그안에서관객은삶의진짜모습과마주하게된다.『로마』는감독자신의유년시절기억을바탕으로제작된자전적작품으로,가족과여성,사회적불평등,그리고묵묵히흘러가는시간의잔상들을정교하게담아낸다.카메라는클레오의눈높이에서삶을기록하듯따라가며,그녀가겪는상실과사랑,희생과회복의순간들을담담하게비춘다.이영화는누군가의이름없는헌신이어떻게한가정을지탱해왔는지를조용히증명하며,우리가종종잊고지나는평범한사람들의위대함을찬미하는작품이다.

 

영화 로마 관련 사진

소리 없는 주인공, 클레오의 시선으로 본 가정과 세계

『로마』의핵심은화자인클레오를통해가정이라는작은사회와그밖세계를관찰하는구조에있다.클레오는멕시코시티중산층가정에서일하는가사도우미로,아이들을보살피고청소와요리를도맡는다.하지만그녀는단순한조연이나배경이아니다.카메라는일관되게클레오의시선에서세상을비추며,그녀의몸짓과침묵을따라간다.그녀는가정의갈등,남편의부재,아이들의혼란속에서묵묵히자신의자리를지킨다.또한개인적인고통도겪는다.사랑했던남자의배신,예기치못한임신,그리고출산의비극까지.하지만그녀는울부짖지도않고세상을원망하지도않는다.그녀의조용한인내는가정전체를붙잡는보이지않는기둥이된다.감독은클레오를위대한주인공으로미화하지않으면서도,그녀의존재가삶의중심임을영화내내지속적으로강조한다.이조용한목소리는현대사회속에서보이지않는수많은‘클레오’들의현실을반영하는은유이기도하다.

정지된 화면속 움직이는 감정, 흑백 영상미의 정적서사

『로마』는시각적으로매우특이한방식을선택한다.흑백촬영과긴테이크,수평카메라무빙을활용해마치한폭의사진처럼장면을구성한다.이러한연출은감정의과잉을배제하고,삶의결을있는그대로기록하게한다.관객은인물들의대사보다주변소리,공간의질감,움직임의속도에집중하게된다.이영화는드라마틱한음악이나과장된표현없이도깊은감정을전달한다.특히해변에서의장면,병원에서의출산장면,시위속에서의혼란등은감정적절정없이도관객의가슴을먹먹하게만든다.영화는삶의극적인순간보다그사이를채우는정적인시간들에집중하고,그속에서인물의감정이조용히흘러나오도록한다.이러한연출은관객으로하여금영화를‘본다’기보다‘경험한다’는감각을안긴다.그경험은기억의결같고,실제삶의한조각처럼사무치게다가온다.『로마』는‘삶은드라마가아니라누적된시간의흐름’이라는사실을그대로보여준다.

사회적 불평등과 보이지 않는 헌신에 대한 무언의 기록

영화는클레오의삶을따라가며자연스럽게멕시코사회전반의계층문제와성별불평등을비춘다.클레오는가정의일원이지만동시에가족이아닌존재로취급받는다.그녀의방은옥상에위치하고,식사는따로하며,가족들의행복을지켜보며자신의감정은숨긴다.하지만그녀는가장위태로운순간마다아이들을구하고,가정을지켜낸다.특히해변에서아이들을구해낸장면은그녀의헌신이더이상사적인차원이아니라‘생명’그자체를지키는차원임을상징적으로보여준다.또한영화는당시멕시코시티에서벌어진실제시위와폭동을배경으로삼아개인의삶과사회적격변이교차하는순간을포착한다.그속에서클레오같은존재들은가장먼저고통받지만,가장많이참고버틴다.감독은이러한현실을비판적어조가아닌,기록자적태도로묘사하며관객에게생각할시간을부여한다.결국이영화는‘살아낸다’는것이얼마나위대한가에대한조용한헌사이다.

결론 : 조용하지만 강했던 한 여자의 기억으로 남다

『로마』는거창한주제를말하지않는다.대신하루하루묵묵히살아가는한여자의삶을따라가며,그속에서인간의존엄과사랑,희생을정직하게비춘다.클레오의이야기는특별하지않지만,그렇기에더많은이들에게닿는다.우리는종종눈에띄는사람만기억하지만,사실우리삶을지탱해주는이들은이름없는사람들이다.『로마』는그들에게조명을비추며,보이지않는헌신이야말로가장강력한사랑의형태임을말한다.이영화는단순한추억의기록이아니다.그것은존재의의미에대한성찰이자,지금도어디선가묵묵히누군가를위해살고있는사람들에대한찬가이다.마지막장면에서하늘을올려다보는클레오의모습은마치그녀자신의삶을처음으로돌아보는순간처럼보인다.우리는그녀를잊지못할것이며,그조용한존재감은영화가끝난후에도오래도록남는다.『로마』는우리모두의삶어디엔가있을법한누군가의이야기를가장아름답고조용한방식으로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