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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바이 더 씨>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슬픔과 회복의 기록

by rednoodle02 2025. 7. 5.

 

케네스 로너건 감독의 『맨체스터 바이 더 씨(Manchester by the Sea, 2016)』는 한 남자가 감당하기 힘든 상실과 죄책감 속에서 조용히 삶을 이어가는 과정을 담아낸 작품이다. 주인공 리 챈들러는 과거의 비극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 혼자 살아가던 중, 형의 죽음을 계기로 조카의 보호자가 되기 위해 다시 ‘맨체스터’로 돌아온다. 영화는 특별한 극적 장치 없이 리의 내면과 기억, 그리고 현재의 일상을 오가며 인물의 감정선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슬픔이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저 함께 살아가야 할 감정임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회복은 해결이 아니라 ‘동행’의 문제이며, 감정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머물며 지속된다는 메시지를 조용히 전달하는 수작이다. 감정의 진폭보다는 여운의 깊이로 관객을 끌어당기는 이 영화는, 진정한 인간의 고통과 회복을 가장 사실적으로 담아낸 작품 중 하나다.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관련 사진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 맨체스터의 바닷가

리 챈들러는 보스턴에서 건물 수리 일을 하며 고독하게 살아간다. 그는 무뚝뚝하고 말이 없으며, 주변과 감정을 나누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형 조의 죽음을 알리는 연락을 받고 고향 맨체스터로 돌아가게 된다. 그곳은 그가 과거의 큰 비극을 겪은 장소이며, 다시 돌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편집을 통해 리가 어떤 상실을 겪었는지를 점차 밝혀낸다. 과거, 그는 화재 사고로 아이들을 잃었고, 그 죄책감과 슬픔은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가 되어버렸다. 도시에서의 무표정한 삶은 그가 감정을 단절하고 살아가려는 방어기제였다. 그러나 맨체스터로의 귀환은 그가 묻어두었던 기억과 정면으로 다시 마주하게 만든다. 이 공간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리의 내면과 깊이 연결된 감정의 장소다. 바닷가, 집, 형의 배, 아이들의 사진 등 모든 것이 리를 죄책감 속으로 다시 끌어당긴다. 그는 끝내 이 공간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책임과 감정의 충돌, 조카와의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변화

형의 유언에 따라 리는 조카 패트릭의 법적 보호자가 된다. 그러나 그는 이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고 느낀다. 그에게는 아직 자신조차 돌보지 못하는 감정의 파편들이 남아 있고, 패트릭은 사춘기 소년답게 고집이 세고 감정적으로 복잡하다. 두 사람은 한 집에서 어색하게 동거하며, 서로의 감정을 천천히 이해해간다. 리는 자신의 상처를 내보이지 않으려 하지만, 패트릭은 종종 그의 감정의 균열을 목격한다. 영화는 보호자와 아이의 관계라는 틀을 넘어서, 두 상처받은 인물이 어떻게 서로의 아픔을 감지하고, 말 없이 함께하는지를 보여준다. 패트릭 역시 아버지를 잃은 상실을 겪고 있지만, 그 방식은 리와는 다르다. 그는 일상을 유지하며 고통을 애써 무시하려고 하지만, 결국 불쑥불쑥 감정이 터져 나온다. 이들의 관계는 어떤 극적인 화해나 변화 없이, 작은 순간들을 통해 조심스럽게 진화해간다. 인간은 완전히 치유되진 않더라도, 누군가와 함께하면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저 함께 살아가는 것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점은, ‘회복’이 마치 목표처럼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리는 마지막까지도 감정을 완전히 털어내지 못한다. 그는 여전히 무겁고, 말이 없으며, 과거의 죄책감 속에 산다. 하지만 중요한 변화는, 이제 그는 그 감정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는 패트릭과 함께 살 수 없다고 말하지만, 자주 찾아오겠다고 약속한다. 이는 회피가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관계를 이어가려는 노력이다. 영화는 감정의 완전한 회복이나 극복을 보여주기보다는, 상실과 함께 ‘사는 법’을 가르친다. 리는 과거를 떠올리며 울고, 예전의 아내를 만나 고개를 숙인다. 그 순간들은 모두 그가 여전히 ‘슬픔과 함께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눈물로 감정을 쏟아내는 대신, 침묵 속에서 더 깊은 울림을 준다. 인간은 반드시 나아지지 않아도 된다. 다만 오늘 하루, 조금 덜 무겁게 견디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결론: 상실을 껴안고도 삶은 계속된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상실을 이겨내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받아들이고 껴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리 챈들러는 비극 이후에도 여전히 무너진 상태지만, 그는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하고, 책임지려 하며, 자기 방식으로 감정을 다스리려 애쓴다. 이 영화는 ‘감정을 말로 풀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듯하다. 말보다 표정, 침묵, 행동 속에서 전달되는 감정의 결은 진짜 삶과 닮아 있다. 우리는 때때로 극복되지 않는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사람은 관계를 맺고, 일상을 반복하며, 내일을 향해 걷는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그 고단한 현실을 극적이지 않게, 그러나 깊이 있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단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삶은 조금 덜 고통스러워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진심이야말로, 가장 강한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