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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이민자 가족의 뿌리 내리기와 한국적 정서의 보편성

by rednoodle02 2025. 8. 5.

 

<미나리>(Minari)는 1980년대 미국 아칸소를 배경으로, 한국계 이민자 가족의 정착기를 다룬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영화다. 영화는 농장을 일구며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아버지 제이콥, 그를 묵묵히 지지하지만 가족의 안정을 바라는 어머니 모니카, 그리고 두 자녀와 할머니 순자 사이의 관계를 통해 가족, 정체성, 희생, 희망이라는 주제를 섬세하게 풀어낸다. <미나리>는 미국 땅에 뿌리내리려는 한 가족의 분투를 통해, 이민자들의 고단한 현실과 동시에 작은 기적 같은 연대를 그려낸다. 특히 할머니 순자의 존재는 영화의 정서적 중심축으로, 전통적 가치와 새로운 문화 사이에서 흔들리는 가족의 감정선을 이끌어간다. 이 영화는 화려한 서사 없이도 삶의 디테일과 정서를 통해 깊은 울림을 남기며, 한국인의 정서가 어떻게 세계인의 공감을 이끌어내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영화 미나리 관련 사진

아메리칸 드림과 가장의 딜레마

<미나리>의 아버지 제이콥은 미국 땅에서 성공적인 농장을 일구겠다는 꿈을 품고 캘리포니아에서 아칸소 시골로 가족을 이주시킨다. 그가 추구하는 아메리칸 드림은 단지 경제적 성공만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인가를 이뤄냈다’는 존재의 증명에 가깝다. 그러나 그 꿈은 현실의 장벽과 부딪히며 점차 균열을 드러낸다. 농작물이 실패하고, 물 공급에 문제가 생기며, 수입이 끊기면서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자존심 사이에서 제이콥은 내면의 갈등을 겪는다. 아내 모니카는 아이들을 안정적인 환경에서 키우길 원하지만, 제이콥은 끊임없이 ‘성공’을 증명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부부의 갈등은 단순한 가정 내 불화가 아니라, 이민자 가족이 처한 생존과 정체성 사이의 긴장으로 읽힌다. 제이콥의 딜레마는 곧 많은 이민자들이 겪는 ‘꿈’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며, 영화는 이를 과장 없이 자연스럽게 보여주며 관객의 공감을 이끈다.

 

할머니 순자와 세대 간 문화의 충돌과 화해

할머니 순자의 등장은 <미나리>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순자는 한국에서 막 미국으로 온 인물로, 전통적인 말투와 행동방식을 고수한다. 그녀는 손자 데이빗에게 “욕하고 카드 치는 이상한 할머니”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 사이엔 특별한 유대감이 형성된다. 데이빗은 처음에는 순자를 경계하고 멀리하지만, 점차 그녀의 사랑과 따뜻함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이는 세대 간, 문화 간 충돌이 단순한 갈등이 아니라 학습과 포용의 과정을 통해 해소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순자의 캐릭터는 웃음을 유발하는 동시에,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다른 세대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그녀가 집을 지키고 불을 내며, 미나리를 심는 과정은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기억’과 ‘생명력’을 부여하는 행위다. 순자는 새로운 환경에서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며, 동시에 가족에게 새로운 뿌리를 내릴 가능성을 제시한다.

 

미나리의 상징성, 뿌리와 생명력의 은유

영화 제목이자 작품의 핵심 모티프인 ‘미나리’는 단단하고 생명력 있는 풀로, 어디서든 잘 자라고 뿌리를 내리는 식물이다. 순자가 개울가에 몰래 심은 미나리는 영화 내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관통하는 깊은 상징성을 지닌다. 미나리는 환경을 가리지 않고 스스로 뿌리를 내려 자라나기에,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이민자 가족의 정체성과 닮아 있다. 특히 영화 후반, 집이 화재로 무너지고 모든 것이 초기화된 듯한 상황 속에서도, 개울가의 미나리는 무사히 자라고 있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의 메시지를 함축한 강력한 은유로, 비록 현실은 무너졌지만 삶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음을 시사한다. 미나리는 눈에 띄지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존재처럼, 가족 구성원 각각이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가는 힘을 상징한다. 영화는 이 작은 식물을 통해 회복력, 생명력, 그리고 희망을 조용히 이야기한다.

 

결론 - 뿌리를 내린다는 것의 의미

<미나리>는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지만, 동시에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정체성’과 ‘가족’에 대한 영화다. 제이콥의 고집, 모니카의 인내, 데이빗과 순자의 관계, 미나리의 생명력은 모두 ‘살아낸다’는 것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인물들의 내면과 관계의 변화, 그리고 환경에 적응하려는 노력들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외부의 적이나 극적인 갈등 대신, 일상 속 작은 위기와 감정의 진폭을 통해 인물들은 조금씩 성장하고 서로에게 뿌리를 내려간다. <미나리>는 미국이라는 타국에서 살아가는 한국인 가족의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는 전 세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감정이 있다. 결국 이 영화는 “우리는 어디에서 뿌리를 내리는가?”, “뿌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남기며, 삶이란 얼마나 조용하고 단단한 것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미나리>는 우리 안의 가장 순한 사랑과 의지를 담은 아름다운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