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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한국 사회의 단면을 파고든 계급 서사

by rednoodle02 2025. 6. 30.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은 단순한 서스펜스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빈부격차, 계급, 주거 문제, 노동의 존엄성 등 현대 사회의 근본적인 구조를 냉정하고도 날카롭게 해부한 작품이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포함해 전 세계 영화제를 휩쓴 이 영화는 한국 사회만의 문제가 아닌, 전 지구적 문제를 담고 있어 더욱 강한 울림을 남긴다. 흑백의 악과 선이 아닌, 회색의 현실 속에서 서로 얽히고 설킨 두 가족의 모습은 관객에게 ‘기생’이라는 단어가 말하는 본질적 불편함을 상기시킨다. 동시에, 어떤 가족도 완전히 옳거나 그르지 않다는 균형 잡힌 시선은 이 영화를 단지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영화가 아닌,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으로까지 확장시킨다. 『기생충』은 한국 영화의 정점이자, 현대사회의 정체된 현실을 향한 조용한 외침이다.

 

 

 

반지하와 언덕 위, 주거 공간이 말하는 계급

『기생충』의 가장 상징적인 설정은 두 가족의 ‘주거 공간’이다. 기택 가족이 사는 반지하 방은 햇볕이 들지 않고, 창문 밖으로는 오줌 싸는 취객과 곰팡이 벽지가 전부다. 반면 박 사장 가족의 고급 주택은 탁 트인 마당, 자동문, 첨단 주방이 갖춰져 있다. 단순히 배경의 차이를 넘어, 이 공간 자체가 이 영화에서 ‘계급’을 말하는 중요한 장치다. 이 영화는 한 번도 직접적으로 “우리는 가난하다”거나 “저들은 부자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계단, 문턱, 높이, 빛의 유무를 통해 공간적 차이를 시각적으로 강조한다. 특히 영화 후반, 기택 가족이 폭우를 뚫고 반지하로 내려가는 장면은 ‘현실의 낙하’이자 ‘계급의 추락’을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바로 그날, 박 사장 집에서는 캠핑 파티가 열린다. 이 대조는 현대 사회가 겪는 ‘같은 시공간 속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기생충』은 공간을 통해 말한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이 주거의 대비는 단지 세트 디자인이 아니라, 사회 구조 그 자체에 대한 시적 진술이다.

 

‘냄새’라는 비가시적 계급의 언어

이 영화가 가장 섬세하게 계급을 드러내는 장치는 바로 ‘냄새’다. 박 사장 가족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기택의 몸에서 풍기는 ‘지하철 냄새’, ‘좁은 공간의 냄새’를 불편하게 여긴다. 그리고 기택 가족도 그 눈빛과 뉘앙스를 인지하며 점점 불편함과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이 ‘냄새’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워지지 않는 차이, 계급 간의 간극이기도 하다. 특히 박 사장이 고개를 찌푸리며 코를 막는 장면은, 관객에게도 ‘후각적 차별’이라는 새로운 감각적 통찰을 제공한다. 중요한 건, 이 냄새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제거할 수 없는 차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양복을 입고 고급 집에서 일을 해도, ‘하층 계급’이라는 정체성은 몸에 배어 있다는 잔인한 현실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 냄새는 영화의 폭력적 결말로 직결된다. 기택이 박 사장을 살해하는 순간, 그 방아쇠를 당긴 건 단지 분노가 아니라, 그가 느낀 수치심과 차별에 대한 극단적 반응이었다. 『기생충』은 계급이 단지 소득의 차이가 아니라, 감각의 차이로도 표현될 수 있음을 말하며,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차별’에 집중한다.

 

착취인가 기생인가, 경계의 윤리학

『기생충』은 제목부터 불편함을 준다. 기생이라는 단어는 주체적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타인의 자원을 빼앗아 살아가는 존재를 말한다. 그런데 영화는 묻는다. 과연 누가 누구에게 기생하고 있는가? 기택 가족은 박 사장 가족에게 몰래 침투해 가사도우미, 운전기사, 미술 치료사로 ‘취업’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언뜻 보면 그들은 박 사장 가족의 안락한 삶에 기생하는 존재로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박 사장 가족 역시 그들의 노동 없이는 일상 유지가 어렵다. 이는 단순히 고용 관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착취와 의존’이라는 양면적 관계다. 영화는 이 경계에 질문을 던진다. 노동은 당연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가? 고용주는 노동자를 단지 기능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 그리고 계급을 넘는 관계란 가능한가? 이런 물음 속에서 『기생충』은 단순한 피해자와 가해자, 선과 악의 구도를 넘어서며, 인간 사회가 가진 복잡성과 모순을 조명한다. 특히 영화의 후반, 지하에 숨어 있던 또 다른 가족의 존재는 ‘기생의 중첩’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관객의 윤리 감각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처럼 『기생충』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를 통해, 세상의 불편한 진실을 거울처럼 비춘다.

 

결론 -『기생충』은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현실이다

『기생충』은 한 편의 영화지만, 그 여운은 단지 영화관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도시, 우리가 지나치는 거리, 우리가 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매일 반복되고 있는 이야기다. 계층 간의 이동이 막힌 사회에서, 타인의 공간을 탐하며 생존을 꾀하는 이들은 결코 영화 속 인물만이 아니다.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정치적 구호를 외치지 않는다. 대신, 시선과 조명, 대사와 사운드를 통해 무언의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떤 구조 위에 서 있는가?” 『기생충』은 한국적 현실을 바탕으로 하지만, 전 세계가 공감한 이유는 그 질문이 인류 보편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계급 구조에 관한 영화이자, 동시에 공존의 불가능성과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몸부림에 관한 영화다. 결국 우리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더 이상 ‘남의 이야기’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 『기생충』은 영화가 어디까지 사회를 비출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답이자, 우리 시대가 스스로 마주해야 할 현실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