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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오브 메탈> 소리의 상실이 전하는 삶의 진실

by rednoodle02 2025. 7. 1.

다리우스 마더 감독의 『사운드 오브 메탈(Sound of Metal, 2019)』은 소리를 잃어가는 드러머의 이야기를 통해 정체성과 수용, 그리고 삶의 방식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청각 상실이라는 물리적 변화는 단순한 장애의 문제가 아닌, 주인공 루벤의 존재 전체를 뒤흔드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루벤은 처음엔 소리를 되찾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시간이 흐르며 ‘다름’과 ‘고요함’을 새로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 영화는 단순한 성장 드라마나 장애극복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무엇을 잃고, 무엇을 새롭게 얻는가’를 치열하게 묻는다. 리즈 아흐메드의 몰입도 높은 연기와 실제 청각장애인을 포함한 배우들의 리얼리즘은 극의 몰입도를 끌어올리고, 사운드 디자인은 관객에게 청각 상실의 감각을 생생히 전달한다. 『사운드 오브 메탈』은 소리를 잃었기에 비로소 ‘자기 자신’을 듣게 되는 인간의 여정을 그린 강렬하고도 섬세한 영화다.

 

소리를 잃는다는 것은 단지 청각의 상실일까

루벤은 헤비메탈 밴드의 드러머다. 그의 삶은 소리로 가득 차 있다. 공연, 리허설, 팬들과의 소통, 연인과의 대화, 심지어 알람과 기계음까지도 그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런 루벤이 갑작스럽게 청력을 잃게 되었을 때, 그는 단순히 ‘듣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게 된 사람’으로 변한다. 청각은 그의 정체성이자 존재방식이었다. 그는 처음엔 청력 회복을 위해 병원을 전전하고, 임플란트 수술을 받기 위해 목돈을 마련하려 한다. 이 모든 과정은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원래의 나로 돌아가려는 절박함’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질문을 던진다. “소리를 잃는다는 것은, 나 자신을 잃는 것인가?” 관객은 루벤의 불안과 혼란을 통해, 청각 상실이 단지 감각의 변화가 아닌 ‘정체성의 해체’임을 체감하게 된다. 이 영화는 소리를 통해 살아가던 인간이 고요함 속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직면’하는 과정을, 눈물이 날 만큼 섬세하게 그려낸다.

 

‘고요함’과 ‘다름’을 수용하는 공동체

루벤은 청력을 잃은 후, 청각장애인 공동체에 들어간다. 이곳은 일상적으로 수어(수화)를 사용하고, 청각이 아닌 시각과 촉각으로 소통하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루벤은 처음엔 이곳을 ‘임시 피난처’로만 여긴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돌아갈 수 있는 세계’가 있다고 믿고, 그것을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공동체의 리더 조는 루벤에게 말한다. “여기선 고치지 않아. 그냥 존재하는 거야.” 이 말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수용’이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함축한다. 루벤은 점차 그들로부터 배운다. 소리 없이 웃고, 소리 없이 소통하며, 소리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불완전하거나 비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영화는 관객이 루벤과 함께 이 공동체의 ‘정적’ 속에 익숙해지도록 만든다. 소리를 완전히 차단하는 장면, 수어를 배우는 과정, 눈빛으로 전해지는 감정은 관객으로 하여금 ‘다름’이 곧 ‘결핍’이 아님을 이해하게 한다. 『사운드 오브 메탈』은 관용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함께 존재하는 방식’을 보여주며, 고요함을 ‘수용의 시작점’으로 제시한다.

 

청각 임플란트, 회복인가 집착인가

루벤은 결국 청각 임플란트 수술을 받는다. 그 결과, 그는 다시 ‘소리’를 얻게 된다. 그러나 그 소리는 이전의 소리가 아니다. 기계음을 통과한 왜곡된 음성, 불완전한 메아리 같은 그 소리는 오히려 고통스러울 만큼 이질적이다. 그는 다시 음악을 할 수도, 공동체에 남을 수도 없는 중간자적 존재가 된다. 이 장면은 관객에게 큰 혼란을 준다. ‘회복’이라 여겼던 것이, 과연 진짜 회복인가? 루벤은 오히려 침묵 속 공동체에 있을 때보다 더 큰 불안과 고립을 경험한다. 영화는 소리의 회복이 곧 정체성 회복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그가 마지막에 기기를 끄고, 처음으로 완전한 ‘정적’에 스스로를 놓는 장면은 영화 전체를 꿰뚫는 메시지다. 그것은 절망이 아니라, 진정한 수용이다. 『사운드 오브 메탈』은 말한다. 우리가 삶을 통제하려 할수록, 오히려 그것은 더 멀어진다고. 진정한 평온은 모든 것을 되찾은 순간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였을 때 온다고. 그 마지막 장면에서 루벤은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 그는 지금, 여기, 조용한 현재에 자신을 놓는다.

 

결론 -『사운드 오브 메탈』은 가장 고요한 울림이다

『사운드 오브 메탈』은 소리를 잃은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진짜로 잃고 얻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영화다. 그것은 감각에 대한 이야기이자, 정체성에 대한 탐구이며, 존재방식의 재정립이다. 이 영화는 ‘청각장애’라는 소재를 소비하거나 극복의 드라마로 포장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을 루벤의 감각 속에 직접 들여보내고, 그 고요함과 혼란, 깨달음을 함께 경험하게 한다. 영화의 마지막 30초, 루벤이 기기를 껐을 때 느껴지는 절대적 침묵은 가장 큰 감정의 소리다. 『사운드 오브 메탈』은 우리 모두가 잃을 수 있는 것, 그러나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청각을 잃은 드러머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당신은 당신을 받아들이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끝나는 영화. 이 조용한 영화가 주는 울림은, 어떤 큰 폭발보다도 깊고 오래간다. 그래서 이 영화는 우리가 스스로를 더 잘 들을 수 있도록 돕는, 아주 특별한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