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The Shape of Water, 2017)』는 단순한 판타지 로맨스가 아니다. 이 작품은 ‘비정상’으로 간주된 존재들이 보여주는 감정의 진실함과, 그 진실이 얼마나 강력하게 세상의 고정관념을 흔들 수 있는지를 말한다. 말을 하지 못하는 청소부 여성 엘라이자와 수조 속 괴생명체의 사랑이라는 설정은 기묘하지만, 그 속에는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정직한 시선이 담겨 있다. 이 영화는 소외된 자들이 어떻게 서로를 통해 치유되고, 세상의 억압을 이겨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사랑이란 본질적으로 어떤 ‘모양’도 없고, 어떤 ‘조건’도 필요 없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던진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고전적 미장센과 아름다운 색감, 몽환적인 음악으로 꾸며졌지만, 그 속에는 명백한 현실의 차별과 불평등, 권력 구조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가 숨어 있다.
말하지 못하는 이들의 진짜 목소리
엘라이자는 말을 할 수 없다. 청소부로 일하며 존재감 없이 살아가는 그녀는 사회적으로 ‘조용한 존재’로 취급된다. 그러나 영화는 그녀의 침묵을 ‘비정상’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표현’으로 바라본다. 수조 속 괴생명체 역시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언뜻 보면 두 존재 모두 ‘소통 불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 깊은 감정으로 연결된다. 손짓과 눈빛, 음악과 감각을 통해 이루어지는 이들의 소통은 오히려 말보다 더 진실하다. 영화는 이 과정을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진짜로 말을 하고 있는 건 누구인가?” 정작 인간들, 특히 정부 요원이나 과학자들은 많은 말을 하지만, 그 속에는 이해나 공감이 없다. 반면 말이 없는 이들은 그 무엇보다 명확하게 사랑과 신뢰를 주고받는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말의 결핍이 아니라 ‘감정의 완성’을 통해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정의한다. 엘라이자의 존재는 소외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가장 순수한 인간의 감정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괴물인가, 존재인가 – 인간 중심주의에 대한 도전
수조 속 괴생명체는 미 정부의 기밀 생물로 실험실에 감금되어 있다. 인간들은 그를 ‘생물학적 표본’으로 취급하며, 해부하고 분석하려 한다. 그러나 엘라이자의 시선은 다르다. 그녀는 이 존재를 두려워하거나 궁금해하기보다는 ‘존중’한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여기서 ‘인간 중심주의’에 강력한 이의를 제기한다. 과연 인간이 아닌 존재는 모두 도구이거나 위험물이어야 하는가? 영화는 생김새나 소통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괴물’로 낙인찍히는 존재들을 통해, ‘정상’이라는 개념 자체를 흔든다. 특히 영화의 배경이 미국의 냉전기라는 점은 체제 간 경쟁과 편협한 사고방식을 더욱 강조한다. 괴생명체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공포와 권력에 기반을 두며, 그를 이해하려는 자들은 사랑과 연민에서 출발한다. 결국 이 영화는 ‘괴물’이 누구인지 묻는다. 외형이 다른 존재인가, 아니면 타인의 고통을 무시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인가? 『셰이프 오브 워터』는 그 경계를 명확히 하지 않는다. 대신, 경계를 허무는 사랑만이 ‘존재의 자격’을 새롭게 설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로맨스인가, 저항인가 – 사랑을 통한 반전의 서사
영화의 줄거리는 판타지 로맨스의 전형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작품은 ‘사랑’을 통해 사회 구조를 뒤흔든다. 엘라이자의 연인은 괴물이 아니라, 체제 바깥에 있는 존재이고, 그와의 관계는 단지 개인적인 사랑이 아닌 ‘존엄의 회복’이자 ‘주체성의 선언’이다. 그녀는 그를 탈출시키기 위해 직접 계획하고 행동하며, 위험을 감수한다. 이는 단순한 애정 표현이 아니라, 권력에 맞서는 행동이고, 감정이 사회적 행동으로 전환되는 서사다. 영화 속에서 주변인물들 또한 마찬가지다. 흑인 동료 젤다, 은퇴한 광고 디자이너 자일스, 과학자 호프스태틀러 등 모두 주류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이며, 이들이 힘을 모아 체제에 균열을 낸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이처럼 사랑을 사회적 저항의 에너지로 전환시키며, 사랑이 단지 감성적 현상이 아닌, 정치적이고 실천적인 힘임을 보여준다. 결국 이 영화는 말한다. 가장 조용하고, 가장 외면받던 존재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다고. 그것이 사랑의 ‘모양(shape)’이다.
결론 -『셰이프 오브 워터』는 경계 없는 존재에 대한 헌사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인간과 비인간, 정상과 비정상, 말과 침묵, 사랑과 저항 사이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흐릿함 속에서 가장 순수한 감정, 가장 본질적인 연대를 발견한다. 영화는 ‘사랑이란 모양이 없고, 형태도 경계도 없다’는 점을 시각적으로, 서사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엘라이자는 사랑을 선택하고, 그 선택은 죽음의 공포를 넘는 해방이 된다. 물속이라는 경계의 장소에서 이들은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단지 아름다운 영상미를 자랑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본질, 타자의 존중, 사랑의 해방력에 대한 강한 선언이자 시적 저항이다. 사랑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누가 누구를 사랑하느냐가 아니라, 그 사랑이 ‘얼마나 진실하냐’에 달려 있다. 이 영화는 그 점을 아름답고도 단호하게 증명한다. 그리고 말한다. 우리가 외면한 존재에게 손을 내밀 때, 세상은 진짜로 바뀔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