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 2017)』은 1980년대 이탈리아 북부의 한적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17세 소년 엘리오와 대학원생 올리버 사이에 피어난 짧고도 강렬한 여름의 사랑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햇살과 나무, 책과 음악, 과일과 언어가 어우러진 공간 속에서, 영화는 인간 감정의 가장 본능적이고 복합적인 층위를 탐구한다. 이 영화는 단순한 동성 로맨스나 성장 서사가 아니다. 오히려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무르익으며, 또 얼마나 갑작스럽게 끝날 수 있는지를 담담하면서도 찬란하게 보여준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말보다 눈빛, 사건보다 여백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섬세한 작품이며, 관객으로 하여금 “그 여름”의 감각을 가슴 깊이 떠올리게 만드는 정서적 체험 그 자체다.
감정의 시작, 엘리오의 혼란과 설렘
엘리오는 매년 여름을 가족의 별장에서 보내며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 지적인 소년이다. 그러나 그 해 여름은 달랐다. 아버지의 연구를 돕기 위해 온 대학원생 올리버가 도착하면서, 엘리오의 내면에는 알 수 없는 파동이 일기 시작한다. 처음엔 무심하게 굴던 올리버에게 반감을 느끼던 엘리오는 점점 그에게 끌리는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이 감정은 명확한 언어나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단지 시선, 동선, 무심한 말투 속에 숨어 있다가 서서히 드러난다. 엘리오는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점점 감정에 정직해지고자 한다. 영화는 그의 내면을 섬세하게 따라가며,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특히 밤늦게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엘리오의 뒷모습, 올리버가 엘리오의 어깨를 스치듯 만지는 장면 등은 감정이 말없이 확장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사랑의 ‘기원’을 다룰 수 있는 드문 작품이다.
사랑의 전개, 관계의 열기와 불안
엘리오와 올리버의 관계는 어느 순간부터 명확히 변화한다. 두 사람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그 감정을 행동으로 옮긴다. 그러나 이 관계는 사회적으로, 현실적으로 불안정한 틀 위에 놓여 있다. 올리버는 몇 주 뒤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며, 엘리오의 마음은 아직 성장 중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뜨겁게 끌리지만, 동시에 상대방이 자신과 같은 무게로 감정을 느끼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의심한다. 이 부분에서 영화는 사랑의 이중성을 드러낸다. 그것은 기쁨과 동시에 고통을 동반하고, 확신과 불안을 동시에 불러온다. 특히 두 사람이 외딴 계곡에서 함께 보낸 하루는 사랑의 절정이면서, 이별이 임박했음을 직감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이 영화는 사랑의 감정이 짧은 시간 안에 얼마나 풍성하게 피어나고 또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감정은 끝나지 않았지만, 계절은 바뀌고, 사람은 떠난다. 여름은 그렇게 흘러간다.
상실의 수용, 아픔 속에서 자라는 감정의 무게
올리버가 떠난 뒤, 엘리오는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그러나 영화는 그 상실을 단순한 슬픔으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감정 속에서 엘리오는 ‘사랑했다’는 사실 자체를 확인하고, 성숙해져 간다. 영화 후반, 아버지와의 대화 장면은 이 작품 전체의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아버지는 말한다. “슬픔을 피하려 하지 마라.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축복이야.” 이 말은 단지 위로가 아니다. 이는 감정을 깊이 느끼는 존재만이 진짜 인간이며, 사랑은 비록 끝나더라도 감정의 깊이는 영원하다는 철학적 통찰이다. 마지막 장면, 엘리오가 벽난로 앞에서 홀로 앉아 눈물을 흘리는 롱테이크는 영화 역사상 손꼽히는 장면이다. 그는 말하지 않지만, 그 감정은 보는 이의 가슴을 찢는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사랑의 아픔이 꼭 상처만은 아니라는 진실을 말해준다. 그 아픔 덕분에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했던 순간을,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를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기억하게 된다.
결론: 덧없는 여름이 남긴 감정의 영원함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덧없는 여름날처럼 스쳐 지나가는 사랑의 시간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사랑이 남긴 흔적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엘리오가 사랑을 통해 느낀 기쁨과 슬픔, 욕망과 상실은 곧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올리버는 떠났지만, 그 시간은 엘리오 안에 남아 한 사람의 감정과 정체성을 완성해준다. 영화는 말한다. 사랑이 항상 이어질 필요는 없지만, 사랑한 기억만은 영원하다고. “Call me by your name, and I’ll call you by mine.” 이 문장은 단지 두 사람의 친밀감을 넘어, 그들이 얼마나 깊이 연결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사랑이란 감정이 얼마나 섬세하고, 얼마나 잔혹하며, 또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증명한 영화다. 그 여름의 빛과 열기,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났던 감정은 결국 우리 모두의 기억 속 어딘가에 존재한다. 그 이름이 내 이름처럼 느껴질 만큼 가까웠던 그 순간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