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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투 더 스파이더버스> 정체성과 책임, 멀티버스가 확장한 영웅성의 새로운 문법

by rednoodle02 2025. 8. 18.

 

<인투 더 스파이더버스>(Spider-Man: Into the Spider-Verse, 2018)는 멀티버스 설정과 혁신적 애니메이션 문법을 통해 “누구나 마스크를 쓸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감각적으로 구현한 슈퍼히어로 애니메이션이다. 마일스 모랄레스는 우연한 사고로 스파이더맨의 능력을 얻지만, 기존 영웅성의 기준과 자신의 불안 사이에서 흔들린다. 영화는 코믹스의 하프톤, 스크린톤, 인쇄 오프셋 어긋남, 말풍선, 의성어를 영상 문법에 통합하고, 캐릭터별 프레임레이트·렌더 스타일을 달리하는 실험으로 서사와 형식을 정밀하게 결합한다. 피터 B. 파커, 그웬 스테이시, 누아르, 페니 파커, 스파이더 햄 등 ‘다른 세계의 거미들’은 성장 서사를 비등점으로 끌어올리는 거울이며, 각 세계의 상실과 책임을 공유하는 동지로서 마일스의 선택을 촉진한다. 킹핀이 구축한 콜라이더의 붕괴는 과학적 재난이자 정체성의 충돌을 상징하고, 애런 삼촌(프라우러)의 비극적 운명은 마일스의 윤리 형성에 결정적 전환점을 제공한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유려한 비주얼 엔진에 존재론적 질문을 얹어, 슈퍼히어로 장르의 보편성을 확장하는 데 성공한다.

 

 

영화 스파이더맨 인투 더 스파이더 버스 관련 사진

“누구나 마스크를 쓸 수 있다” 대표성, 차이, 보편성의 합

마일스는 라틴계·흑인 혼혈 청소년으로, 엘리트 예술학교와 브루클린 골목의 이중 세계 사이에서 정체성의 불협을 겪는다. 그는 피터 파커와 달리 ‘이미 완성된 영웅’의 계보를 이어받기보다, 기준 자체를 새로 쓴다. 영화는 영웅담의 보편성을 “닮음”이 아니라 “다름”에서 길어 올린다. 각 스파이더는 상실을 공유하나, 표현의 방식과 윤리의 언어는 다르다. 그웬은 상실 후의 단절로, 피터 B.는 중년의 권태로, 누아르는 시대의 허무로, 페니는 테크노-감정의 결합으로 상처를 견딘다. 이들은 마일스가 자신의 리듬을 찾을 때까지 개입을 최소화하며, “네 방식으로 뛰어”라는 조언을 남긴다. 대표성의 장치도 설득력 있다. 마일스는 신체·문화적 차이를 숨기지 않고, 스프레이 아트와 조던 스니커, 후드를 수트 위에 겹쳐 입는다. 이는 단순한 스타일링이 아니라, 서술 주체의 회복이다. 마지막 다이브-업(실제로는 낙하를 뒤집은 상승 샷)은 두려움의 추락이 선택의 비상으로 변환되는 상징적 이미지다. 영화는 영웅의 보편성이 ‘누구나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가 아니라 ‘각자가 자기만의 목소리로 책임을 택할 수 있다’에 있음을 선언한다.

 

프레임레이트, 하프톤, 색분판이 만든 이야기의 엔진

서사는 형식으로 확장된다. 마일스는 초반 12fps에 가까운 낮은 프레임으로 표현돼 주변과 약간 어긋난 움직임을 보인다. 자신의 페이스를 발견하는 순간부터 24fps로 매끄럽게 ‘업그레이드’되며, 이는 캐릭터 내적 성장을 시각적 리듬으로 번역한다. 하프톤과 스크린톤, CMYK 색분판 오버프린트, 레지스터 미스(인쇄 어긋남) 같은 코믹스 인쇄 흔적은 세계의 촉감을 바꾸고, 속도선·의성어·말풍선은 편집적 장치를 다이제시스 안으로 끌어들인다. 인물별 렌더 철학도 치밀하다. 누아르는 대비 강한 흑백 그레인, 페니는 애니메-셀셰이딩, 햄은 고무호스 카툰의 탄성으로 현실감을 파열시키며, 이질적 스타일의 공존 자체가 멀्टी버스의 존재론적 근거가 된다. 콜라이더 시퀀스의 글리치·프랙털 공간은 차원의 중첩을 추상화하고, 스프레이 페인팅 몽타주와 그래피티 태깅은 ‘이름 붙이기’를 통해 주체를 탄생시킨다. 사운드는 시각을 돕는다. 808 킥과 트랩 하이햇, 포스트 말론·스웨이 리의 “Sunflower” 같은 테마는 도시적 감수성을 부여하고, 프라우러의 불협화음 모티프는 공포의 생리 반응을 즉각 촉발한다. 이 모든 형식적 실험은 감탄을 위한 과시가 아니라, ‘성장’과 ‘선택’의 내러티브를 지속적으로 밀어 올리는 동력이다.

 

가족, 멘토, 그리고 윤리적 결단

마일스의 여정은 히어로 코스튬을 얻는 사건이 아니라, 상실을 처리하는 절차다. 경찰관 아버지 제프는 법과 공공성의 언어로 세계를 설명하고, 삼촌 애런은 자유와 반항, 예술적 감수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애런이 프라우러라는 사실의 폭로와 죽음은 두 세계의 조화를 불가능하게 만들며, 마일스에게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벼락처럼 던진다. 피터 B. 파커와의 관계는 실패의 윤리를 가르친다. 중년의 피터는 자신의 결핍과 무모함을 투명하게 인정하며, 멘토를 ‘완성된 정답’이 아니라 ‘함께 넘어지는 동행’으로 그려낸다. 킹핀의 동기는 또 다른 거울이다. 그는 사랑하는 가족을 되찾기 위해 다중우주를 찢는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은 타 세계를 파괴하는 폭력으로 귀결된다. 영화는 사랑의 명분이 윤리를 면책하지 않음을 분명히 하고, ‘책임’은 개인 감정의 강도보다 공동의 안전과 연결에 우선한다는 원칙을 제시한다. 마일스가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를 먼저 말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킹핀을 제압하며, 친구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결단은 영웅성의 핵이 타인을 살리는 배려임을 증명한다. 엔딩의 개방형 소통(그웬의 포털 콜)은 멀티버스를 혼돈이 아니라 협력의 네트워크로 재정의한다.

 

결론 -  차이를 자산으로 전환하는 현대적 영웅학

<인투 더 스파이더버스>는 슈퍼히어로 장르를 ‘힘의 과시’에서 ‘정체성의 협상’으로 이동시킨다. 코믹스 인쇄술의 물성을 복원한 이미지, 인물별 움직임의 리듬 차이, 사운드의 도시적 질감은 서사와 형식이 서로를 주석하는 교본이 된다. “누구나 마스크를 쓸 수 있다”는 슬로건은 대표성의 마침표가 아니라 출발선이다. 누구나 쓸 수 있기에, 각자는 자기 방식으로 책임을 정의해야 한다. 마일스가 선택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연습과 실패의 공개, 두려움보다 연대를 우선하는 용기, 그리고 배운 것을 다음 사람에게 건네는 순환이다. 그래서 영화의 진짜 혁신은 멀티버스도, 화려한 작화도 아닌, 관객의 자리 바꾸기다. 우리는 구경꾼에서 착용자로 이동하고, 스크린 밖에서 각자의 도시·가족·공동체를 무대로 작고 실용적인 영웅주의를 실천할 차례다. 차이는 분열의 원인이 아니라 창조의 재료다. 이 작품은 그 사실을 가장 아름답고 유쾌한 방법으로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