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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앤 줄리아> 요리, 글쓰기, 그리고 시간 너머 멘토링의 탄생

by rednoodle02 2025. 8. 19.

 

<줄리 앤 줄리아>(Julie & Julia, 2009, 감독 노라 에프론)는 두 개의 평행선 같은 시간을 교차 편집해 요리와 글쓰기의 의미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1950년대 파리에서 프랑스 요리를 배우며 인생 2막을 여는 줄리아 차일드와, 2000년대 뉴욕에서 블로그 ‘줄리아 차일드 요리책 524개 레시피 365일’을 도전하는 줄리 파월의 여정은 시대·매체·환경이 다르지만 ‘무언가를 꾸준히 만들고 기록하는 사람’이라는 동일한 정체성으로 수렴한다. 영화는 성공담을 미화하지 않는다. 실패한 수플레, 깨진 계란, 일의 번아웃, 관계의 마찰, 댓글의 잔혹함까지 삶의 구체적 질감을 놓치지 않음으로써, 성취의 미학이 아니라 ‘과정의 윤리’를 전면에 세운다. 노라 에프론의 유려한 대사와 리듬, 메릴 스트립과 에이미 아담스의 입체적 연기, 음식의 질감을 살린 미장센이 합쳐져, 관객이 감각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드문 창작 영화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요리 영화이자 창작 노동의 멘토링 드라마이며, 무엇보다 일상을 작품으로 바꾸는 꾸준함에 대한 러브레터다.

 

영화 줄리 앤 줄리아 관련 사진

 

요리는 노동이자 언어: 재료·기술·반복의 윤리

영화가 가장 솔직한 지점은 요리를 낭만으로 포장하지 않는 태도다. 줄리아는 르 꼬르동 블루에서 칼질, 육수, 소스의 기초를 끝없이 반복하며 손의 기억을 만든다. 정밀한 기술—예컨대 버터의 온도, 루의 색, 와인의 감산—은 우연이 아니라 측정과 관찰의 결과임을 영화는 집요하게 상기시킨다. 줄리 또한 퇴근 후 지친 몸으로 마켓에 들러 닭을 손질하고, 실패한 보프 부르기뇽을 다시 끓이며, 글로 실패의 이유를 분석한다. 이 반복의 노동은 단순한 요리 숙련을 넘어 ‘문장’을 빚는다. 레시피는 문법이고, 조리는 문장 구성이며, 플레이팅은 문체다. 더 중요한 건 이 언어가 타인과 연결되는 방식이다. 남편에게, 친구에게, 블로그 독자에게 음식을 건네는 행위는 돌봄의 정치학이다. 영화는 이 돌봄이 사적 공간—부엌—에서 발원하지만, 공적 장—책·방송·블로그—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농담과 실수를 숨기지 않는 글, 실패를 기록하는 태도, 기술을 공유하는 마음은 ‘요리=결과물’이라는 협소한 정의를 벗어나게 한다. 결국 요리는 노동이며, 언어이며, 관계를 조리하는 기술이다. 그리고 그 언어는 연습으로만 유창해진다.

 

창작과 삶의 균형: 번아웃, 관계, 그리고 인정 욕구의 다룬 방법

줄리의 프로젝트는 낭만적 선언에서 시작하지만 곧 현실의 마찰을 만난다. 데드라인이 주말과 휴식, 배우자와의 시간을 잠식하고, 댓글과 조회수는 그의 기분을 좌우한다. 영화는 여기서 창작 노동의 그림자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좋아요’의 등락은 동기부여의 촉매이자 독이며, 인정 욕구는 에너지이자 중독이 된다. 줄리아의 서사는 이를 성숙하게 관통한다. 그는 출판 거절과 방송 기획의 부침 속에서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매일’이라는 원칙을 교정하지 않는다. 배우자 폴과의 신뢰는 일과 삶의 균형 장치로 작동한다. 반대로 줄리는 프로젝트가 관계의 균열로 번지자, ‘과정의 기쁨’을 되살리고 기준을 외부 성과에서 내부 약속으로 재설정함으로써 균형을 회복한다. 영화는 창작과 삶이 제로섬이 아님을 말한다. 중요한 건 리듬의 조정—하루 한 접시의 요리, 한 편의 성실한 글, 한 번의 식탁 대화—이고, 그 리듬을 무너뜨리는 건 완벽주의다. 실패를 기록하는 용기, 잠시 멈추는 판단, 옆에 있는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는 태도는 장기 프로젝트의 내구성을 높이는 가장 실용적 기술이다.

 

시간 너머의 멘토링: 페르소나, 미디어, 그리고 여성의 일

두 인물은 직접 만나지 않지만, 멘토링은 분명히 일어난다. 줄리아의 책은 줄리의 부엌을 찾아와 레시피 너머의 태도를 전수한다. ‘두려워하지 말 것. 버터를 충분히 쓸 것. 기초를 존중할 것.’ 이 간결한 규범은 기술을 넘어 자기 존중의 문장이다. 미디어는 이 연결을 증폭한다. 방송 속 줄리아의 페르소나는 유쾌하고 크고 다정하다. 그는 ‘여성의 일’로 하대되던 부엌을 공적 지식의 장으로 끌어올리고, 가사 노동을 전문성과 재미의 언어로 번역했다. 줄리는 블로그라는 초창기 소셜 플랫폼을 통해 ‘일상의 전문성’을 공유 경제로 전환한다. 상징적 장면은 책장을 넘기는 손과 키보드 타건, 팬에서 튀는 버터가 교차될 때다. 매체가 달라도 본질은 같다. 기록은 의미를 남기고, 의미는 공동체를 만든다. 영화는 또한 페미닌 레이버에 대한 시각을 뒤집는다. 요리는 재생산 노동이지만, 지식과 서사를 더하면 문화 산업이 된다. 줄리아와 줄리는 이 전환의 두 개의 좌표로서, 여성의 일과 창작의 가치를 재정의한다. 그 결과 ‘좋은 레시피’는 기술 목록이 아니라, 누군가가 자기 삶을 지키는 방식을 담은 이야기임이 분명해진다.

 

결론 - 꾸준함의 미학: 하루 한 접시, 한 문장, 한 걸음

<줄리 앤 줄리아>가 남기는 교훈은 단순하다. 거창한 영감보다 꾸준한 실천이 삶을 바꾼다. 오늘의 작은 접시가 내일의 장을 열고, 한 문장의 기록이 공동체와 나를 이어준다. 실패는 창피가 아니라 데이터이며, 반복은 지루함이 아니라 숙련의 유일한 길이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부정하지 말되, 그 마음이 목적을 삼키지 않도록 리듬을 관리하라. 옆 사람과 식탁을 나누고, 스스로에게 친절하라. 요리와 글쓰기는 결국 사랑의 다른 표현이다. 버터를 데우는 온도, 소금의 한 꼬집, 문장의 쉼표 하나는 타인을 배려하는 미세한 기술이다.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365일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대단할 필요는 없다. 오늘 저녁의 한 접시, 오늘의 한 단락, 오늘의 한 통화면 충분하다. 그렇게 하루 한 걸음씩, 우리는 각자의 부엌과 책상에서 삶을 조리하고 기록하며, 시간을 건너 누군가의 멘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