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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 몸과 정체성, 인간성과 기계의 경계를 넘나드는 충격 서사

by rednoodle02 2025. 8. 8.

 

<타이탄>(Titane)은 한계 없는 육체성과 정체성 탐구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뒤흔드는 작품이다. 줄리아 듀코르노 감독은 인간과 기계의 융합이라는 기묘하고도 독창적인 설정을 통해, 사회적으로 정해진 성별, 신체의 고정성, 가족의 의미를 전복시킨다. 이 영화는 자동차 사고로 머리에 티타늄 판을 삽입한 소녀 알렉시아가 성장하여 연쇄 살인을 저지르고, 신원을 숨기기 위해 실종된 소년으로 위장해 소방서 대장 뱅상과 기묘한 유대 관계를 맺는 과정을 다룬다. 외형적 폭력성과 충격적인 장면들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내면의 결핍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줄리아 듀코르노는 <로우>에 이어 또다시 ‘신체’를 통해 인간을 말하며, 그 누구도 아닌 자신으로 존재하려는 인물의 고군분투를 강렬하게 시각화한다. <타이탄>은 혐오와 사랑, 공포와 수용, 파괴와 재탄생을 동시다발적으로 그려내는 파격적이면서도 감성적인 현대 바디 호러 걸작이다.

 

영화 타이탄 관련 사진

알렉시아: 신체의 탈경계, 정체성의 재구성

알렉시아는 영화의 시작부터 이질적 존재로 묘사된다. 어린 시절 자동차 사고로 머리에 티타늄 판을 삽입한 후, 그녀는 금속에 성적 욕망을 느끼며, 점차 인간 사회와의 단절을 심화시킨다. 그녀의 연쇄 살인은 단순한 폭력적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 틀과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려는 극단적인 저항으로 읽힌다. 알렉시아는 몸을 통해 말한다. 그녀는 말이 없고, 표정이 거의 없으며, 대신 육체적 움직임과 행위로 감정을 표출한다. 자동차와의 관계, 임신이라는 초현실적 설정, 성별을 숨기기 위한 신체 훼손은 모두 ‘고정된 정체성’에 대한 도전이자 해체다. 알렉시아는 남성도 여성도 아닌, 인간도 기계도 아닌 존재로 스스로를 구성하며, 관객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듀코르노는 신체의 일그러짐을 통해 정체성의 유동성과 경계 해체를 시각화하며, 새로운 인간상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알렉시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새로운 종(species)이자, 새로운 감각을 가진 존재이다.

 

뱅상과의 관계: 조건 없는 수용의 서사

알렉시아가 실종된 소년 ‘아드리안’으로 위장해 들어간 소방서에서 만난 뱅상과의 관계는 영화의 핵심 정서 축을 이룬다. 뱅상은 아들의 실종 이후 죄책감과 상실 속에 살아가는 인물로, 눈에 띄게 근육을 키우고, 약물에 의존하며 자신의 부서진 정체성을 유지하려 애쓴다. 그는 알렉시아가 진짜 아들이 아님을 의심하면서도, 그 존재를 조건 없이 받아들인다. 이 수용은 혈연이나 진실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존재 자체에 대한 이해와 사랑에 가깝다. 알렉시아 역시 처음엔 뱅상을 기만하려 하지만, 점차 그와의 관계 속에서 ‘인간성’을 회복한다. 두 사람은 말보다 행동으로, 폭력보다 온기로 연결된다. 영화 후반부의 욕실 장면, 포옹, 출산은 모두 이 상처 입은 두 인물 간의 깊은 정서적 교류를 나타낸다. 이 관계는 기존의 가족 모델을 해체하며, 유대와 수용이 어떻게 새로운 인간관계를 가능케 하는지를 보여준다. <타이탄>은 ‘누군가가 나를 받아들인다’는 감정이 얼마나 치유적일 수 있는지를 묵직하게 전한다.

 

바디호러와 감정 드라마의 경계 융합

<타이탄>은 바디 호러의 외형을 취하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인간의 감정과 연결, 수용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있다. 신체 변형, 피, 고통, 임신 등 충격적인 시퀀스들은 단지 시각적 공포를 유발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을 외화하는 메타포로 기능한다. 알렉시아의 육체는 끊임없이 경계를 침범당하고 변화하며, 이 과정을 통해 그녀는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한다. 줄리아 듀코르노는 신체를 해체하고 조립하며, 이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재정의하려 한다. 이 영화에서 바디 호러는 감정의 언어다. 출산 장면조차 공포스럽지만 동시에 숭고하며, 인간 존재의 확장처럼 느껴진다. 시청자는 혐오와 아름다움, 공포와 감동을 동시에 느끼며, 기존 장르 영화의 문법이 얼마나 유연해질 수 있는지를 체험하게 된다. 듀코르노는 육체와 감정, 파괴와 구원,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를 무화하며, 영화라는 예술이 전달할 수 있는 정서의 깊이를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결론 -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생명체의 탄생

<타이탄>은 단순한 충격 영화도, 장르적 실험에 그치는 작품도 아니다. 줄리아 듀코르노는 이 영화를 통해 인간성, 정체성, 관계의 본질을 근원적으로 해체하고, 재조립한다. 알렉시아는 새로운 생명체의 상징이며, 뱅상은 무조건적인 수용의 구현이다. 이들은 피와 상처, 고통 속에서 진짜 유대를 발견하고, ‘가족’이라는 개념을 확장시킨다. 영화는 끊임없이 관객에게 불편함을 유도하지만, 그 안에는 인간 존재에 대한 따뜻한 질문이 담겨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존재로 수용받을 수 있는가? <타이탄>은 이 질문에 대해 잔혹하지만 진실한 방식으로 답한다. 영화의 마지막 출산 장면은 새로운 종의 탄생이며, 동시에 새로운 감정적 언어의 시작이다. 이 작품은 바디 호러를 통해 감정 드라마를 완성시키는 드문 예로, 관객의 미적, 정서적 한계를 동시에 자극한다. <타이탄>은 경계를 허물고, 잊을 수 없는 방식으로 감정을 남기는 영화로, 현대 영화 예술의 지형을 새롭게 그린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