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은 단순한 역사극을 넘어, 시대의 진실과 그것을 밝히려는 사람들의 용기를 정면으로 응시한 작품이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는 한 사람의 죽음이 어떻게 민중의 분노로 번지고, 결국 민주주의를 향한 거대한 움직임으로 확장되는지를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권력에 저항한 검사, 기자, 의사, 대학생, 교도관 등 다양한 인물들은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하며, 각각의 서사가 거대한 시대의 조각으로 맞물리며 감동을 증폭시킨다. 영화는 사실적 연출과 강력한 감정선으로 관객을 압도하며, 우리가 누리는 현재의 자유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1987>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며, 용기와 연대의 힘을 이야기하는 위대한 작품이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모든 시작의 불꽃
1987년 1월, 서울대 학생 박종철이 경찰 조사 도중 사망한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영화는 이 비극적인 죽음을 단순히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죽음을 둘러싼 진실 은폐와 이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초반부는 사건의 은폐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당국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거짓말로 사건을 축소하려 하는 장면은 당시 권력이 진실을 어떻게 조작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는 이 사건을 다룰 때 단순히 피해자 박종철만을 중심에 놓지 않고, 그의 죽음이 어떻게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폭넓게 조명한다. 검찰 내부의 정의로운 검사, 이를 보도하는 기자, 그리고 침묵을 거부한 일반 시민들 모두가 이 사건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며 연대하는 모습은 강한 울림을 준다. 이 작은 불꽃은 결국 대한민국의 거대한 민주화 운동을 촉발시킨 도화선이 된다.
이름 없는 사람들의 연대
<1987>의 가장 큰 미덕은 역사 속 ‘유명인’만이 아니라, 이름 없는 시민들의 행동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교도관, 병원 직원, 대학생, 기자 등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진실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분투한다. 이들은 거대한 권력 앞에서 극히 작은 존재일 뿐이지만, 그들의 행동은 진실의 조각을 하나하나 밝혀낸다. 특히 유해진이 연기한 교도관 한병용은 영화 속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체제에 순응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양심의 목소리를 따라 중요한 정보를 외부로 전달한다. 김태리의 대학생 연희 역시 가해자 가족이라는 무게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알게 된 뒤 행동을 선택한다. 영화는 이런 인물들을 통해 ‘민주주의는 몇몇 영웅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름 없는 사람들의 용기 있는 선택으로부터 비롯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한다. 이 연대는 과거의 기록이 아닌,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필요한 덕목으로 남는다.
진실과 저항을 담아낸 연출과 디테일
장준환 감독은 <1987>을 단순한 역사 재현 영화가 아니라, 감정과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하는 작품으로 완성시켰다. 실제 사건 기록에 충실하면서도, 인물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하고 시대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재현했다. 특히 조명과 색감, 공간 연출은 당시의 암울한 사회 분위기를 압도적으로 전달한다. 숨죽인 취조실, 어둠이 깔린 교도소, 촛불이 번지는 거리 등은 영화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중요한 장치다.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나다.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김태리 등 주조연 모두가 실존 인물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면서 영화의 리얼리티를 강화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감정선의 조율이다. 억울한 죽음,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 용기 있는 행동의 결과까지 영화는 냉정함과 감동을 절묘하게 오가며 관객의 몰입을 끌어낸다. 이는 단순히 ‘알려주는 영화’가 아닌, ‘느끼게 만드는 영화’로서 <1987>이 지닌 예술성과 사회성을 동시에 입증하는 요소다.
결론 - 1987이 우리에게 남긴 것
<1987>은 과거의 사건을 재현한 영화이지만, 그 안에서 전달되는 메시지는 철저히 현재를 향한다. 영화는 권력이 진실을 어떻게 억누르고, 시민이 어떻게 그것을 밝혀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우리가 자유를 누리고 있는 지금의 현실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는지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특히 ‘말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주제는 오늘날에도 강력한 울림을 준다. 영화는 거대한 영웅서사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와 연대를 통해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을 보여주며, 민주주의의 본질을 되묻는다. <1987>은 단순한 추모가 아니라, 끊임없는 경각심과 책임을 요구하는 영화다. 그래서 이 작품은, 우리가 앞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곧 미래를 바꾸는 일이다. <1987>이 남긴 감동과 경고는 그래서 결코 끝나지 않는다.